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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살랑살랑
글 · FunTe 공포 단편선
⚠️ 심약자 주의 — 「흐아아아아암!」
「흐아아아아암!!」
나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 옆에 난 작은 창문 앞에 섰다. 꼬박 여덟 시간을 엉덩이 한 번 안 떼고 법전만 들여다봤더니 눈알이 뻑뻑하고 뒷목이 돌덩이 같다.
한창때, 벌써 10년 전이라니. 열아홉에 수능을 준비하며 느꼈던 그 부담감과 압박감이 새삼 되살아난다. 그때의 각오와 지금의 각오를 나란히 놓아본다. 그리고 보란 듯이 말아먹은 그 시험을 떠올리니, 절로 한숨이 샌다. 바람이 쐬고 싶다. 나는 창틀 홈에 오른손 네 손가락을 걸고 팔에 힘을 주었다.
드륵 끼익 끽 끼기기기긱……
창문이 듣기 싫은 쇳소리를 내며 마지못해 열린다. 월 20만 원짜리 낡은 고시원에 딱 어울리는, 낡고 좁은 쪽창. 얼굴 하나 겨우 내밀 만한 그 틈으로 밤바람이 밀려들었다. 착잡한 속을 시원하게 헹궈주려는 듯, 선선하고 기분 좋은 바람이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바람만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그 시원함에 익숙해지자마자, 눌러두었던 부담감이 다시 슬금슬금 비집고 올라온다.
수능을 망친 뒤, 나는 제대로 노력한 적도 없으면서 '실패'라는 핑계를 방패 삼아 삐뚤어졌다.
'나는 어차피 안 돼. 해봐야 뭐 해.'
그 패배주의가 내 20대의 뼈대였다. 한 번뿐인 인생,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 그러니 하루하루 즐기며 살자. 어린 나에게 그 말은 그럴싸했다. 그렇게 한량처럼 흘려보냈다. 20대 초반은 어느새 중반이 되었고, 눈 깜짝할 새 서른을 코앞에 둔 나이가 되어버렸다. 백수건달로 띵까띵까 놀던 나에게도 뒤늦게 경각심이라는 게 생겼다. 나 같은 놈도 결혼이란 걸 하고, 남들처럼 떳떳하게 살고 싶어진 것이다. 뭘 해야 하나 고민한 끝에 고른 게 공무원 시험이었다. 결정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됐지만, 결정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제 이겨내야 할 건 실패에 대한 압박감과 성공에 대한 부담감. 스물아홉이라는 숫자는 그 두 감정을 사정없이 부풀린다. 나는 눈을 떴다. 어제 막 들어온 고시원이라, 이 창밖 풍경도 처음이다.
쪽창 너머의 밤 풍경은 딱히 멋질 것도 없지만, '밤' 특유의 고요하고 차분한 공기가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좁은 틈으로나마 드문드문 별이 박힌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왠지 편안하다.
그리고 시선을 내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맞은편 건물을 바라본다. 붉은 벽돌로 외벽을 올린 오래된 연립주택. 5층쯤 될까. 열 가구 남짓 살 법한, 그 흔한 낡은 주택의 측면이 내 방 창문에 통째로 걸려 있다. 별다를 것 없는 풍경이다. 시선을 더 아래로 내려 길거리를 보려는데—
'어라?'
시선을 내리는 도중, 무언가가 눈에 걸렸다.
그 주택의 3층쯤. 내 방이 4층이니 대충 그 정도 높이의, 외벽 오른쪽. 거기에 뭔가 시커먼 것이 붙어 있었다. 시커멓고 길쭉한 무언가가 벽에 딱 달라붙어 있고, 그 아래쪽 끝이—
살랑살랑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저게 대체 뭐지?'
건물 외벽에 붙은 시커멓고 길쭉한 것이, 살랑살랑, 나른하게 흔들린다. 처음엔 건물을 꾸미는 장식 같은 건가 싶었다. 하지만 예쁘지도 않고, 붙은 자리도 어중간하고, 저런 걸 외벽에 매달아 놓을 이유가 도무지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머리로 딱딱한 법 조문만 종일 씹어서인지, 나는 저것의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짐작조차 안 되니, 도리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멍하니, 그 검고 길쭉한 것을 바라보았다.
살랑살랑
살랑살랑
살랑살랑
살랑살랑……
선선하던 바람이, 너무 오래 맞아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서늘하게, 이내 서늘함을 넘어 차갑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느끼기가 무섭게 한 줄기 강한 바람이 훅 불어닥쳤고—
나는 숨이 멎을 뻔했다.
가볍게 살랑이던 그것이, 강풍을 받아 크게 나부끼는 그 모양이,
검고 긴 생머리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등을 보이고 선 여자의, 긴 머리카락. 벽에 얼굴을 파묻고 매달린 여자의 뒷모습.
한 번 그렇게 보이기 시작하자, 다시는 다른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저 위쪽 끝, 머리카락이 시작되는 그 지점에, 둥근 정수리 같은 것이 어렴풋이 벽에 눌려 있는 게 보였다. 사람 하나가, 파리처럼, 3층 높이 외벽에 거꾸로 매달려 붙어 있는 것이다.
「흐억!!」
나는 얼떨결에 당혹감을 소리로 뱉어냈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내가 뱉은 그 소리가, 저 검고 길쭉한 것에게도 분명히 닿았으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찰나.
그 길고 검은 것이 벽에서 붕 떠올랐다. 외벽에서 살짝 몸을 뗀 그것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등지고 선 사람이 부름을 듣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듯이.
그것이 절반쯤 돌았을 때, 나는 직감했다.
창문을 닫아야 한다고.
나는 황급히 두 손으로 창틀 홈을 움켜쥐었다. 그와 동시에, 완전히 돌아선 그 검은 것과 눈이 마주쳤다.
튀어나올 듯 부풀어 오른 커다란 두 눈알. 귀밑까지 길게 찢어진 입. 그 입안에 빼곡히 돋아난 송곳 같은 이빨들. 그것은—아니, 그 '머리'는—몸통도 팔다리도 없이, 오직 머리 하나에 긴 생머리만 늘어뜨린 채로, 나를 향해 소름 끼치게 웃으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나는 미친 듯이 창문을 밀어 닫았다.
끼기기긱 끽 끽 끼익!!!
반쯤 닫히던 창문이 금속 마찰음을 내지르며 뻑뻑하게 걸렸다. 하필. 하필 지금. 어제부터 이 창은 반쯤에서 늘 걸리곤 했다. 나는 온몸의 무게를 실어 창틀을 밀었다. 손바닥이 홈에 쓸려 찢어지는 것도 몰랐다.
어느새 2, 3미터 앞까지 날아온 머리가, 흉측하게, 즐겁다는 듯 웃는다. 검은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뱀처럼 꿈틀거린다.
「아아아아악!!!!」
목숨이 걸렸다는 걸 온몸이 먼저 알았다. 나는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팔에 남은 힘을 전부 쥐어짰다.
끼기기기긱— 탁!!
창문이 마지막 한 뼘을 밀고 들어가 닫히는 바로 그 순간, 그 소름 끼치는 머리와 나는, 유리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정면으로 마주 보게 되었다.
다리에서 힘이 쭉 빠졌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흉측한 얼굴이 내 작은 쪽창을 가득 메운다. 유리에 코가 눌릴 만큼 바싹 붙어서, 나를 내려다보며, 소름 끼치게 웃으며—입맛을 다신다. 츱, 츱. 유리 너머로 그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커다란 두 눈은 잠시도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그저 창에 얼굴을 붙인 채, 방 안을 들여다보며, 계속, 계속, 입맛을 다신다. 굶주린 것이 진열장 너머의 먹이를 바라보듯이.
이걸 어쩐다…….
나는 겁에 질려 바닥에 얼어붙은 채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그러다 문득, 아주 뒤늦게, 서늘한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저 머리가 붙어 있던 맞은편 주택의 외벽. 하필 그 3층 자리에도…… 이렇게 작은 쪽창 하나가, 나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저것은, 방금 전까지, 그 집의 어느 방 창문을 이렇게 들여다보고 있었던 걸까.
유리 한 장. 고작 유리 한 장.
나는 그 얇은 유리 너머의 웃는 얼굴을 마주 본 채, 오직 한 가지를 간절히 바란다.
누군가, 부디 누군가가,
내 방 창문을 봐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