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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친절
글 · FunTe 공포 단편선
⚠️ 심약자 주의 — 늦은 저녁, 집으로 가는 길이다.
늦은 저녁, 집으로 가는 길이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스크린도어 앞에서 열차를 기다린다. 곧 열차가 바람을 밀며 들어오더니 속도를 줄이고 멈춘다. 스크린도어가 열리는 그 순간,
학생, 내가 먼저 탑시다!
옆을 보니 웬 후줄근한 아저씨가 양팔에 목발을 짚고 서 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계산을 마쳤다. 어차피 두 줄로 넉넉히 들어갈 만한 폭이고, 안에는 빈자리도 많다. 굳이 저 느린 걸음을 기다려 줄 이유가 없다.
나는 냉큼 열차에 올라 모퉁이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그 아저씨를 바라보았다. 아저씨는 목발을 짚고 뒤뚱거리며 겨우겨우 열차에 올랐다. 그러더니 나를 힐끔 보고는,
옘병할! 내가 먼저 기다렸는데 지가 먼저 타는 거 보소!
하고 욕지거리를 뱉었다. 어이가 없고 기분이 나쁘다. 아저씨는 잠시 서 있다가 다음 역에서 내려 버렸다. 내리는 옆모습을 보니, 후줄근한 잠바 주머니에 캔 음료가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참나. 저렇게 고집불통에 말도 안 되는 사고방식으로 나이만 처먹은 사람들이 문제라니까.
나는 상한 기분을 추스르고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 나는 무사히 내 방 침대에 누웠다.
◆ ◆ ◆
아니, 어쩌면 그날은 이렇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지하철 스크린도어가 열려 한 발을 내딛으려는데,
학생, 내가 먼저 탑시다!
하는 소리에 옆을 보았다. 양팔에 목발을 짚은,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서 계셨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네, 먼저 타세요.
하고는, 뒤뚱거리는 그 아저씨를 부축해 드렸다. 팔을 붙들어 가장자리 빈자리에 앉혀 드리고 다른 칸으로 가려는데,
학생, 고마워. 요즘 세상에 학생같이 착한 사람도 있고, 참 다행이야. 자, 옆에 앉아서 이거라도 한잔해.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옆에 앉았고, 아저씨가 잠바 주머니에서 꺼내 건네는 캔을 엉겁결에 받았다. 은근히 시원한 탄산이길 바랐는데, 포도주스다. 그것도 미지근한.
검지 손톱으로 따개를 잡고 힘을 주었다.
칙……
왠지 맥없는 소리가 났다. 탄산이 다 빠진 듯한, 김빠진 소리. 나는 예의상 한 모금을 넘겼다. 미지근하고 텁텁한, 어딘가 씁쓸한 뒷맛.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그저 조금 젊은 사람의 도리로 도운 것뿐인데 일이 이렇게 되니 괜히 뻘쭘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이것저것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꺼풀이 무겁다. 화면의 글자가 두 겹으로 번진다. 손끝이 저릿하고, 목덜미가 노곤하게 풀린다. 오늘 그렇게 피곤했나. 옆에서 아저씨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 흐릿하게 느껴진다. 괜찮아, 학생. 그냥 눈 좀 붙여. 그 목소리가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멀었다.
나는 그렇게, 잠에 빠졌다.
◆ ◆ ◆
단순 가출로 처리되었던 대학생 A군(21)의 실종 신고는, 신고 하루 뒤 지하철역 CCTV를 확인하면서 납치 및 인신매매 사건으로 재분류되었다.
아들이 가출할 리 없다고 굳게 믿은 A군의 부모는, 경찰과 함께 역내 CCTV를 돌려 보았다.
2014년 11월 14일 00시 30분경. 여러 대의 화면에 A군이 찍혀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후줄근한 잠바를 입은 남자가, 축 늘어진 A군을 부축해 역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있었다. 남자는 목발 두 개를 반대편 옆구리에 척 끼고, A군의 팔을 제 어깨에 두른 채 걸었다. 화면 속 그 모습은 영락없이, 다리가 불편한 학생을 도와주는 친절한 광경이었다. 지나가던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그 장면을 보고 A군의 어머니가 오열했다. 아버지는 얼굴이 벌게진 채 씩씩거렸다. 두 사람은 한마음으로 경찰을 닦달하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아들을 찾아내겠다고, 굳게 믿으면서.
부모와 경찰과 역무원이 CCTV 앞에 모여 있던 바로 그 순간.
A군은 중국에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도 있었다.
A군은 그의 살점과 내장을 필요로 하는 여기저기로, 조용히 흩어지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