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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카톡
글 · FunTe 공포 단편선
⚠️ 심약자 주의 — ‘오늘도 피곤하구만…
‘오늘도 피곤하구만….’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늘 그렇지만 오늘따라 유독 뼈마디가 무겁다. 어서 집에 가서 뜨거운 물줄기에 몸을 적시고,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캔맥주를 하나 들이켠 뒤 쓰러지듯 눕고 싶다. 목구멍을 톡 쏘며 넘어가는 보리 내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벌써 침이 고인다.
지하철 좌석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완전히 잠들지는 않을 만큼의 긴장을 유지한 채, 나는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덜컹, 덜컹. 레일 이음매를 넘는 소리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물결처럼 밀려왔다 밀려간다. 이 반쯤 잠긴 감각이, 하루 중 유일하게 편안한 시간이다.
문득, 아주 오래전 기억 하나가 눈꺼풀 안쪽에 떠올랐다. 왜 하필 지금인지는 모르겠다. 고등학교 운동장. 노을. 축구공. 그리고 그 옆을 혼자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가던 한 아이의 뒷모습. 나는 그 뒷모습을 몇 번인가 보았다. 왠지 모를 쓸쓸함이 그 등에 얹혀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굳이 다가가지 않았다. 나와 상관없는 아이였고, 나는 쓸쓸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게 편했다. 지켜보기만 하는 건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니까.
기억은 물거품처럼 이내 흩어졌다.
‘카톡 왔숑!’
서류 가방 안에서 핸드폰이 위이잉 떨며 알림음을 냈다. 직장 사람일까, 친구일까. 궁금한 마음에 가방 덮개를 열고 손을 넣어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에 카카오톡 알림창이 떠 있다.
‘A: 야’
의외다.
잊고 있던 이름이다. 어렴풋한 기억이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A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존재감 없는, 그저 그런 아이 중 하나였다. 그리고─ 방금 눈꺼풀 안쪽에 떠올랐던 그 쓸쓸한 뒷모습이, 바로 이 녀석이었다.
이상한 일이다. 방금 아무 이유 없이 그 아이를 떠올렸는데, 그 순간 그 아이에게서 연락이 오다니.
같은 반이었지만 말 한번 섞어 본 적 없었다. 2학년, 3학년으로 올라가면서는 얼굴 볼 일조차 없었다. 그저 몇 번, 혼자 걸어가는 뒷모습을 멀리서 보았을 뿐.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의 얼굴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어떻게 생겼더라. 아무리 뒤져 봐도, 기억 속엔 오직 그 뻣뻣한 뒷모습뿐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프로필 사진에 얼굴이 있지 않을까.
잠금 패턴을 풀고 카카오톡을 열었다. 대화 목록 맨 위에 ‘야’라고 적힌 새 대화방이 올라와 있다. 방을 열자 ‘야’라는 글자 옆에 작은 프로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의 얼굴은 아니었다. 그냥, 새까만 사진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검은 사각형.
말 한번 나눠 본 적 없는 놈이, 10년 만에 왜. 짜증보다는 궁금함이 앞섰다.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어나 보고 끊어도 되겠지. 나는 입력창을 눌렀다.
‘어 오랜만이다. A? 네가 나한테 연락을 다 하고, 무슨 일이냐?’
라고 쓰고 있는데,
「이번 역은 OO, OO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내려야 한다. 나는 핸드폰을 가방에 도로 넣고,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문 앞으로 갔다.
「스크린도어가 열립니다.」
문이 열리고, 나는 승강장으로 내려섰다. 개찰구를 향해 걸으며 가방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잡았다. 그 순간─
지이이잉!
손바닥으로 진동이 파고들었다.
‘카톡 왔숑!’
경쾌한 알림음인데, 타이밍 탓인지 이상하게 불쾌했다. 손끝에 소름이 돋았다.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A: 읽었네?’
순간, 궁금함을 밀어내고 화가 치밀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놈이, 친구 하나 없던 놈이, 매일 혼자 집에 가던 놈이 이딴 식으로 연락을 해? 지금 나한테 시비 거는 건가?
욱하는 마음에 나는 잠금을 풀고 대화방에 들어갔다. 쓰다 만 인사말을 지우고, 입력창에 욕지거리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피로가 스트레스와 함께 정수리까지 치밀어 올랐다. 두 엄지가 바쁘게 화면을 두드렸고, 입술은 나지막이 욕을 흘렸다. 개찰구를 빠져나올 때쯤엔 화면이 욕설로 가득 찼다. 이 정도면 됐다 싶어, 나는 전송 버튼으로 엄지를 옮겼다. 그리고 화면을 누르려는 찰나.
‘어라?’
얼핏 본 그의 프로필 사진이, 아까와 달라져 있었다.
새까맣기만 하던 사진 한가운데에, 흐릿하게 사람 실루엣이 떠올라 있다. 남자의 뒷모습 같았다. 아주 뻣뻣한 자세로, 부동자세로 서 있다. 어둠 속에 못 박힌 듯 선 그 뒷모습이, 이상하리만치 기괴한 느낌을 풍겼다. 사진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불쑥 치민 불길함에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애써 채워 넣은 욕설을 전송하고 싶은 마음이 씻은 듯 사라졌다.
‘그래, 이런 놈한테 욕해 봐야 무슨 소용이겠어.’
나는 핸드폰을 가방에 넣고 발길을 재촉했다. 개찰구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원룸이 다닥다닥 붙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가로등의 주홍빛이 은근하게 깔려 있는데도, 골목은 이상하게 차가웠다. 그 냉기가 셔츠 깃을 넘어 등골을 타고 내려왔다. 오싹했다. 왜일까. 왜 오싹한 걸까.
매일 지나는 골목인데, 오늘은 낯선 긴장이 감돈다. 텅 빈 골목의 정적을, 내 구둣발 소리와 숨소리, 그리고 어느새 빨라진 심장 박동이 채우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은─ 그런 불안을 안고 걷고 있는데,
‘카톡 왔숑!’
◆ ◆ ◆
가방 속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알림음에 온몸이 굳었다. 또 A일까. 발걸음을 재촉하며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A: 야’
‘카톡 왔숑!’
‘A: 야’
‘카톡 왔숑!’
‘A: 야’
같은 글자가,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울려 댄다. 야. 야. 야.
‘도대체 뭐야!’
무시해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A에게 또 화가 났다. 잠금을 풀고 대화방을 열었다. 그런데 프로필 사진이 또 바뀌어 있었다.
새까만 배경에 흐릿한 뒷모습 하나였던 사진이─ 이제는 뻣뻣하게 선 사람 넷으로 늘어나 있었다.
‘어… 어? 뭐야!’
넷의 뒷모습이 낯익다. 어둡고 흐릿하지만, 분명히 낯이 익다. 아니, 낯익은 정도가 아니다.
그 넷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붙어 다닌 내 친구들이었다.
어떻게 A가 저런 사진을 가지고 있지? 내 친구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물어보려고 화면에 손가락을 가져가는데, 등줄기를 훑는 불길함에 손이 멈췄다. 나는 대신 친구들 단체 대화방을 열었다.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이, 모조리 바뀌어 있었다.
넷 다 뻣뻣하게 선 채, 겁에 질려 일그러진 얼굴로 카메라를 향하고 있는 사진. 무언가에 붙들린 듯한, 도망칠 수 없는 표정. 장난이겠지.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첫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원이 꺼져 있다. 둘째. 꺼져 있다. 셋째, 넷째. 모두 전원이 꺼져 있다.
기계음만 골목의 냉기 속으로 흩어졌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카톡 왔숑!’
그 순간, 또 A에게서 카톡이 왔다.
‘A: 너도 어서 대답해’
A의 프로필 사진이, 또 바뀌어 있다.
이번에 그 까만 사진 속에는─ 내가 아는 수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이 있었다. 뻣뻣하게, 부동자세로 선 수십, 수백의 등. 그 맨 앞에는 넷의 뒷모습이, 그리고 그 뒤로 끝없이 이어지는 낯익은 등들이.
그 많은 등을 세어 내려가다가, 나는 문득 깨달았다.
10년 전, 노을 진 운동장에서 혼자 걸어가던 그 쓸쓸한 뒷모습을. 아무도 부르지 않았고, 아무도 다가가지 않았고, 아무도 손을 내밀지 않았던 그 아이를. 나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그게 편했으니까.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아무 책임도 없다고 믿었으니까.
핸드폰이, 손바닥 안에서 다시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가방을 멘 등 뒤, 텅 빈 골목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아주 뻣뻣한 것이, 나를 향해 돌아서는 기척이 느껴졌다.
‘카톡 왔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