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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친구의 편지
글 · FunTe 공포 단편선
⚠️ 심약자 주의 — 안녕.
안녕. A야.
너한테 손 편지를 쓰는 건 처음이지. 봉투를 뜯으면서 너 분명히 웃었을 거다. 「이 자식이 갑자기 웬 편지야」 하면서. 뜬금없는 거 나도 안다. 그래도 이건 꼭 손으로 눌러써서 보내고 싶었어. 화면 너머로는 도저히 못 할 이야기라서.
조금은 기묘하고, 어쩌면 읽는 내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이야기야. 그래도 끝까지 들어줘. 너밖에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그래.
몇 해 전, 술 한잔 걸치고 집으로 걸어가던 밤이었어. 딱 기분 좋을 만큼만 취해서, 세상이 아주 천천히 도는 그런 밤 있잖아. 발밑이 물렁물렁하고, 가로등 불빛이 번져 보이고, 괜히 웃음이 나던. 이상하게 그날따라 거리에 사람이 없더라.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개 짖는 소리 하나 없이 골목이 텅 비어 있었어. 지금 생각하면 그게 첫 번째 경고였는데, 그땐 그냥 운이 좋다고만 여겼지. 나 혼자 이 밤을 다 가진 것 같아서.
그렇게 어두운 주택가 골목을 얼마쯤 걸었을까.
오도독. 오도독.
아주 작은 소리였어. 손톱만 한 소리. 그런데도 취기로 웅웅거리는 세상 속에서 그 소리만은 칼로 오려낸 것처럼 또렷하게 귀에 박히더라. 오도독…… 오도독……. A야, 너도 궁금하지? 그날의 나도 그 소리가 미치도록 궁금했어. 그때 그냥 지나쳐 걸었더라면. 그 한 걸음만 더 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이 문장을 쓰면서도 손이 떨린다.
소리를 따라 걸었어. 오도독…… 오도독. 주기적으로, 규칙적으로, 조금씩 커지면서. 무언가를 아주 정성껏 씹는 소리였어. 주택가를 벗어나 뒷산 자락의 폐공장 단지까지 나를 끌고 가더라. 녹슨 철문, 깨진 유리, 잡초가 발목을 스치는 곳. 소리는 분명 거기서 나고 있었어. 왜 무섭지 않았을까. 왜 소름 한 번 안 돋았을까. 지금 와서 이런 말 해봐야 소용없는 거 알아. 그래도 후회를 안 할 수가 없어. 그날의 나한테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통째로 빠져 있었거든. 오직 호기심뿐이었어. 호기심이 얼마나 사람을 잡아먹는 감정인지, 두려움이 사실은 얼마나 우리를 살려주는 감정인지, 나는 그날 밤에서야 배웠어. 너무 늦게.
그 괴기스러운 소리는 컨테이너 하나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어. 문이 반쯤 열려 있더라. 열 걸음쯤 앞에. 시커먼 입처럼 벌어진 문틈에서 오도독, 오도독, 쉬지 않고. 사방은 정적이었어. 버려진 공장, 인기척 하나 없는 어둠, 그리고 나. 여기서 조금이라도 무서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 걸음. 자갈 섞인 흙바닥이 발밑에서 서걱거렸어. 또 한 걸음. 서걱. A야, 나는 이 대목에서 아직도 등골이 서늘해져. 왜냐면 내가 다가가는 그 순간, 오도독거리던 소리가 뚝 멈췄거든. 그걸 그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씹기를 멈췄다는 건, 저쪽도 나를 알아챘다는 뜻이었는데.
멍청한 나는 열린 문틈으로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어.
그리고 눈이 마주쳤어. 그 여자와.
누군가의 몸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는 여자와.
정말 짧은 순간이었는데, 그 찰나에 나는 너무 많은 걸 이해해버렸어. 오도독거리던 소리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소름 끼치는 건 이거였어. 사람이 반이나 사라졌는데, 컨테이너 바닥에는 핏방울이 겨우 몇 개밖에 떨어져 있지 않더라. 튀지도, 흐르지도 않았어. 이 여자는 사람을 씹어 삼키는 게 아니라, 통째로 거두어들이는 거였어.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런데 A야. 여기서 진짜 놀라운 건 따로 있어.
그 여자가, 굉장한 미인이었다는 거야.
컨테이너의 희미한 어둠 속에서도 새하얀 얼굴이 도드라지더라. 젖은 듯 반짝이는 눈, 오똑한 콧날, 다물면 그림처럼 고왔을 입술. 어떤 남자라도 두 번은 돌아봤을 얼굴이었어. 그 아름다운 여자가, 방금 전까지 사람이었던 무언가를 태연하게 쥐고 있는 거야. 아름다움과 그 광경이 도무지 한 화면에 담기지 않아서, 내 머릿속이 그냥 하얗게 타버리는 것 같았어.
그러다 그 여자가 입을 벌렸어.
입안 가득, 촘촘하게, 톱날 같은 이빨이 몇 겹으로 돋아 있더라. 상어처럼. 그걸 본 순간 아까까지 홀린 것 같던 감정이 싹 걷혔어. 아무 생각도 안 났어. 그저 저 이빨이 사람 뼈를 오도독오도독 갈아내던 그 이빨이구나, 그것만 또렷했어.
이상한 건, 사람을 반이나 먹었는데도 그 여자가 조금도 배불러 보이지 않았다는 거야. 그리고 그게 나한테는 재앙이었지. 나와 마주친 눈에는 여전히, 아직도, 식욕이 이글거리고 있었거든. 여자가 손에 쥔 것을 스르륵 내려놓았어. 그리고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어.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제 곧 저 톱니 같은 이빨이 내 목을 물어뜯겠지. 나도 저렇게 사라지겠지. 아니…… 어쩌면 산 채로. 나는 반쯤 체념했어. 그런데 A야, 사람이 참 우습더라. 술에 절어 다리도 못 가누는 주제에, 그 순간 몸속 어딘가에서 「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명처럼 터져 나왔어.
그래서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는 힘껏 외쳤어.
「한눈에 반했습니다. 저랑 사귀어 주세요!!!」
이게 내가 짜낼 수 있는 최선의 임기응변이었어. 눈을 감은 채 부들부들 떨면서 서 있었지. 머리에 자루를 뒤집어쓴 채 단두대 칼날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기분이 이랬을까. 곧 닥칠 고통이, 제발 내가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고통이기만을 빌면서. 눈을 뜰 용기는 도무지 나지 않았어. 영겁 같은 몇 초가 흘렀어. 발소리가 멈췄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어.
그러다 목소리가 들렸어.
「정말?」
사람을 반이나 씹어 삼킨 입에서 사람의 말이 흘러나오니까, 그게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소리처럼 들리더라. 맑고, 고운, 그래서 더 소름 끼치는 목소리였어.
「네!! 정말이에요!!」
대화가 통한다는 게, 그 순간엔 유일한 구원이었어. 생각해봐. 만약 그 컨테이너 안에 있던 게 굶주린 불곰이었다면, 이런 발버둥조차 못 쳐봤을 거 아니야.
「그럼 눈 떠.」
심장이 발끝까지 쿵 떨어졌어. 눈꺼풀 하나 들어 올리는 게 이렇게 무거운 일인 줄 몰랐어.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눈을 떴어.
코앞에 그 여자의 얼굴이 있더라.
숨이 닿을 만큼 가까이.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어. 그 여자가 소름 끼치도록 천천히 씨익 웃더니, 몸을 돌려 다시 식사를 이어갔어. 다시 시작된 오도독 소리. 좁은 컨테이너 안, 식사를 계속하는 여자와 그걸 지켜보는 나. 나는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어. 그 여자의 태도가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거든. '이걸 다 먹고도 배가 안 차면, 그때 널 어떻게 할지 생각해볼게.'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새 여자의 식사는 끝나가고 있었어. 옷가지와 신발 한 켤레만 덩그러니 남고, 여기 조금 전까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컨테이너는 깨끗해졌어. 사람 하나를 통째로 삼켰는데도 그 여자는, 정말로, 조금도 배불러 보이지 않았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 몸속은 대체 어디로 이어져 있는 거지. 식사를 마친 여자가 입가를 훔치더니 나에게 다가왔어. 그리고 말했어.
「아직 배고프네……」
아,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싶은 순간, 나는 다시 한번 살겠다고 아무 말이나 내뱉었어.
「그…… 그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그러고는 그 여자의 손을 덥석 잡고 컨테이너 밖으로 끌고 나왔어. 손이 얼음장처럼 차갑더라. 사람 체온이 아니었어.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지. 일단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 했어. 이상하게도 그 여자는 순순히 따라오더라. 아무 저항 없이, 마치 처음부터 그럴 작정이었던 것처럼.
주택가를 지나 술집과 음식점 불빛이 번져 있는 대로변까지, 그 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진 적이 없어. 언제든 내 목덜미를 물어뜯을 수 있는 것을 손에 쥐고 걷는 기분을,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경찰서로 갈까도 했어. 그런데 왠지, 이 여자도 경찰서 가는 길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것 같았어. 지금 내가 저를 어디로 데려가려는지도 다 알면서, 그냥 재미있어서 따라와주는 것 같았어.
A야. 그래서 나는 그날, 안주가 맛있어 보이는 그 술집으로 이 괴물 같은 여자를 데리고 들어갔어. 사람들로 북적이는, 웃음소리 가득한 그곳으로.
이제부터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야.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여자와 계속, 사귀고 있어. 몇 해째. 헤어지자는 말은 도저히 못 하겠더라.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내가 어떻게 될지 아니까. 그 여자는 아직도 조금도 배부르지 않은 얼굴로, 매일 밤 내 곁에 있어.
그리고 A야, 요즘 그 여자가 자꾸 그러는 거야.
네 친구들 한번 소개해달라고. 다 같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그래서 이 편지를 쓴 거야. 다음 주에 내가 연락하면, 부디…… 부디 바쁘다고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