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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떤 남자

글 · FunTe 공포 단편선

⚠️ 심약자 주의 — 어떤 남자의 사랑.

어떤 남자의 사랑.

◆ ◆ ◆

나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살려내고야 말았다.

살아난 그녀는 나에게 차가운 눈빛을 한 번 남기고 가 버렸다.

아아.

나는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

◆ ◆ ◆

「사랑해.」

핸들을 쥔 그가 앞을 본 채로, 그러나 온 마음을 나에게 기울인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조수석 창에 어리는 그의 옆얼굴을 보며 웃는다.

「나도 사랑해, 자기야.」

a와 나는 두 달째 연애 중이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우리는 십 년 만에 열린 동창회에서 다시 마주쳤다. 술잔이 오가는 왁자한 자리 끝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만은 이상하게 조용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날 이후 우리는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우산 하나를 나눠 쓰며 젖은 어깨를 맞대는 사이가 되었고, 어느 비 오는 밤 그가 나를 세워 세우고 말했다.

「b. 나 너가 진짜 좋다. 너도 알 거야. 우리 이제 장난 아니게, 진짜 연인으로 만나자.」

a는 내 눈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며 고백했다. 마주 본 그의 눈동자 안에서 나는 그의 진심을 읽었다. 거절할 이유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되었다.

「b, 볼에 뽀뽀 한 번.」

운전대를 쥔 a가 부드럽고 애교 섞인 특유의 목소리로 조른다.

쪽.

나는 그의 오른뺨에 입술을 대고 소리를 냈다. 갓 면도한 뺨에서 옅은 로션 냄새가 났다.

「아, 좋다.」

씨익 웃는 그의 옆모습이 좋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a가 곁눈으로 나를 흘끗 보더니, 핸들은 그대로 쥔 채 고개만 나에게 돌린다. 그의 입술이 촉촉하다. 나는 그 입술에 눈을 고정한 채 잠시 기다린다. 매끈하고 따뜻한 감촉이 내 입술에 닿기를 기대하며, 그의 입술만을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세상을 찢는 굉음과 함께 오른쪽에서 벽이 밀려들었다. 강한 충격이 나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 ◆ ◆

나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살려내고야 말았다.

살아난 그녀는 나에게 차가운 눈빛을 한 번 남기고 가 버렸다.

아아.

나는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

◆ ◆ ◆

여섯 달 전 그 사고 이후로, 우리 사이는 이상하게 어긋나 버렸다. 마주 오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우리 차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몇 군데 뼈가 부러졌을 뿐이지만, 머리를 세게 부딪친 a는 몇 달 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나는 매일 병실에 앉아 그의 손을 쥐고, 감긴 눈꺼풀이 떨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돌아왔다. 우리의 몸은 회복되었고,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a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갔다.

「a, 사랑해.」

라고 하면

「나도 사랑해, 자기야.」

하고 대답은 어김없이 돌아온다. 단어는 예전 그대로다. 그런데도 그의 눈빛에서는 더 이상 그날 밤의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기 직전에 슬며시 시선을 피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이면 입가가 어색하게 굳는다. 부드럽고 애교 섞이던 그 목소리마저,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얼음장처럼 차게 와 닿았다. 마치 사랑한다는 말을 억지로 몸 밖으로 밀어내는 사람처럼.

도대체 a는 왜 변해 버린 걸까. 어디가 아픈 걸까. 나는 알 수 없었고, 알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 ◆ ◆

나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살려내고야 말았다.

살아난 그녀는 나에게 차가운 눈빛을 한 번 남기고 가 버렸다.

아아.

나는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

◆ ◆ ◆

「아무래도.」

현장을 한 바퀴 둘러본 나이 든 형사가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를 찌르고, 저도 따라 죽은 것 같아.」

옆에 선 젊은 형사가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고개를 끄덕인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대체 왜.」

「글쎄다. 돈 문제였거나, 여자가 바람을 피웠거나. 흔한 이유겠지.」

「그런데.」 젊은 형사가 미간을 찌푸린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죽이고 나서, 저렇게 끌어안고 죽은 게.」

모텔 직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두 형사는 방 한가운데를 내려다본다. 피투성이가 된 여자를, 배에 칼이 꽂힌 채 죽은 남자가 두 팔로 끌어안고 있다. 남자의 얼굴은 이상하리만치 평온했다. 두 사람을 둘러싼 새빨간 피가 카펫 위에서 꾸덕꾸덕 검게 굳어 가고 있었다.

◆ ◆ ◆

나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살려내고야 말았다.

살아난 그녀는 나에게 차가운 눈빛을 한 번 남기고 가 버렸다.

아아.

나는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

◆ ◆ ◆

사고 뒤 처음 눈을 떴을 때,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곧바로 알았다. 몇 주를 가사 상태로 누워 있던 나를, b가 침대 옆에서 지키고 있었다. 내 이불 자락을 베고 엎드려 잠든 그녀의 뒤통수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나의 b. 나의 전부. 나는 갈라진 입술을 떼어, 자고 있는 그녀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b. 너를 정말 증오해.」

내 심장이 얼어붙었다.

미치도록 사랑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내뱉은 말은, 내 머릿속 생각과 정반대였다. 나는 분명 ‘사랑해’라고 생각했는데, 입 밖으로는 ‘증오해’가 나왔다.

‘사랑해.’ ―― 「증오해.」

‘b, 너가 좋아.’ ―― 「b, 너가 싫어.」

말도 안 된다. 이건 말도 안 돼. 나는 잠든 그녀에게, 내 세상 전부인 그녀에게 끔찍한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머리를 세게 부딪친 후유증인가. 내 머리와 입이 반대로 뒤집혀 버린 것이다.

혹시나 싶어, 이번에는 반대로 생각해 보았다.

‘b, 너를 정말 증오한다.’ ―― 「b, 너를 정말 사랑한다.」

내 입은 순순히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녀에게 사랑한다 말하려면, 나는 그녀를 증오한다고 생각해야만 한다.

「으음…… 어? a! 깨어났어! 흐아앙, a!」

혼란이 정점에 달한 그 순간, 잠에서 깬 b가 울음을 터뜨리며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따뜻한 그녀를 안은 채, 나는 직감했다. 지금 당장 이 여자를 떠나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떠나지 못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니까. 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증상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말하는 순간 나는 미**이 될 테니까.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지옥에 적응하자는 것이었다. 혼자 있을 때마다 나는 온갖 단어를 소리 내어 시험했다. 다행히 모든 말이 뒤집히는 것은 아니었다. 뒤집히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골라 목록을 만들고, 원하는 말을 뱉기 위해 무엇을 떠올려야 하는지 밤마다 연습했다. 사랑을 말하려면 증오를 생각하고, 좋다고 말하려면 싫다고 생각하는 훈련. 나는 미**이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나는 미**이 아니었지만, 조금씩 미쳐 갔다. 그녀에게 사랑을 속삭일수록 내 마음은 그녀를 증오하는 쪽으로 길들여졌다. 좋은 말을 건네려 애쓸수록, 내 머릿속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생각으로 물들었다. 사랑한다 말하기 위해 나는 하루에도 수백 번 그녀를 증오해야 했고, 그래서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없었으며, 예전처럼 달콤하게 말할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으로만 증오하던 b를 나는 정말로 증오하게 되었다.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 미워하고 싫어하게 된 여자를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것은, 오직 입으로 사랑을 되뇌는 나의 집착 때문일 뿐. 그 이상의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사랑한다」고, 아무 떨림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 ◆ ◆

나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살려내고야 말았다.

살아난 그녀는 나에게 차가운 눈빛을 한 번 남기고 가 버렸다.

아아.

나는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

◆ ◆ ◆

「b, 사랑한다.」

a와 함께 온 모텔 방에서, 그가 사고 전 그날 밤의 그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오래 그리웠던 그 눈빛이다. 마침내 예전의 a가 돌아온 것이다.

「a, 나도 사랑해.」

가슴이 벅차올라 그를 껴안으려 다가가는데,

푸욱.

「아악!」

복부를 파고드는 극심한 통증. 새빨갛고 뜨뜻미지근한 것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감촉이 느껴진다. 그의 손에 쥐인 것을 나는 뒤늦게 보았다.

「a…… 도대체, 왜.」

나는 그렇게,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 a의 손에 죽어 갔다.

◆ ◆ ◆

나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래서 그녀를 살려내고야 말았다.

살아난 그녀는 나에게 차가운 눈빛을 한 번 남기고 가 버렸다.

아아.

나는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

◆ ◆ ◆

나는 그녀를 너무나 증오했다. 그래서 그녀를 죽이고야 말았다.

죽어 버린 그녀는 나에게 ‘따뜻한 눈빛’을 한 번 남기고 가 버렸다.

아아.

나는 그녀에게 가야만 한다.

내 배에 칼을 밀어 넣고, 식어 가는 b를 힘껏 끌어안은 나는, 마지막으로 온 진심을 담아 말했다.

「b. 나는 너를 정말 증오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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